機張倭城(機張竹城倭城)

   
① 住所地: 釜山廣域市 機張郡 機張邑 竹城里 山 52-1번지
② 指定事項: 부산시지정 기념물 제48호
③ 時代分類: 조선 시대
④ 管理者: 국유
⑤ 遺蹟現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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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은 機張邑 竹城里 山 52-1번지 竹城里 마을의 뒷편 해안으로 진출하는 要地에 위치한다. 마을의 이름을 따서 豆毛浦倭城이라고도 한다.
倭城은 竹城灣의 서쪽에 있는 남북 두 개의 작은 구릉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남쪽구릉은 本城, 북쪽구릉은 支城으로서 북쪽의 淸江川을 자연적인 外郭線으로 하고 있다.
本城은 남쪽 海拔 64m의 독립된 구릉의 가장 높은 곳을 「本丸」으로 하는 輪廓式山城이다. 본환(牙城)은 한변이 약 50m인 사각형태로 쌓았고, 서쪽 둘레에 한 단 낮게 한 변이 약 80m인 사각형 외곽(曲輪)을, 동쪽과 북쪽에도 외곽(曲輪)을 연속적으로 축조한 전형적인 日本式城이다.
本丸의 내부는 평평하며 동쪽 죽성만을 향하여 출입구(虎口)가 나 있다. 이 출입구의 동쪽모퉁이는 櫓臺로서 弱手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쪽으로 내려가는 부분에도 출입구가 나 있는데 防禦에 유리하도록 굴절된 통로를 만들었다. 본환의 성벽중 天守台가 있는 남쪽 모퉁이와 북서쪽 모퉁이에서 丁酉再亂때 增築된 것으로 추정되는 덧댄 성벽이 확인되었다. 북, 서, 남면의 성벽은 內外 夾築이나 동쪽은 外面만 석축한 片築이다. 서남쪽 모퉁이는 天守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곳에 비하여 성벽이 높고 두터우며 기와편이 많이 보이고 있다.
기와는 대부분 조선식 기와이며, 최근 일본식 기와도 출토된 바 있다. 성벽의 축조는 화강암을 가공하여 잔돌을 이용, 틈이 없도
이루고 있다. 성벽은 대개 70。정도의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서쪽은 本丸과 等距離를 유지하면서 축조되었는데 서북쪽 모퉁이에 직선상으로 뻗은 석축이 있으며, 이 석축에서 동쪽으로 뻗은 또 하나의 석축으로 연결되어 있다. 남쪽 성벽 아래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호와 연결되는 부분에서 약간의 평지를 이루다가 계단식으로 경사져 도로에 이른다. 본환의 동쪽 아래에는 석
쪽에는북쪽으로연결되는 있다. 각 郭에는 다른 郭으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으며, 서쪽 아래에는 空堀이 설치되어 있다. 이 乾濠는 서남쪽 도로 아래에서 본성과 지성을 연결하는 空堀과 합쳐진다. 서편은 동남쪽에는 해안선에서 올라온 석축(石登り石垣)이 연결되고 있다. 이 석축은 外郭線(摠構え)으로 동남쪽으로 내려가다가 현재 남북으로 나있는 도로와 나란히 이어져 海岸線과 연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성벽 밖으로도 너비 약 7m의 空堀이 설치되어 있다.

북쪽으로 출입구가 있는 평면 마름모꼴의 성벽 바깥에 동쪽으로 성벽이 연결되다가 남북으로 이어진다. 북쪽으로 一直線狀으로 돌출한 성벽이 있다. 이 곳은 本來의 虎口로서 이 곳으로 本城에 들어와 제2지환과 본성사이에 大手門을 통하여 本丸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本城에서 북쪽으로 골짜기를 건너면 서북쪽의 작은 구릉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독립된 성벽이 있는데 이것이 支城이다. 本城과 支城의 서쪽에는 支城의 外郭으로 연결되는 空堀이 둘러져 있다.
支城은 海拔 45m의 낮은 구릉에 石築을 쌓고 동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구릉을 포함시켜 외곽을 쌓았다. 북쪽으로는 이 구릉과 연결되는 일직선상으로 뻗은 臺地로 연결되는데, 현재 기장에서 죽성으로 들어가는 도로로 인하여 단절된 상태이다. 따라서 죽성리 왜성의 방어선은 남북의 두 구릉뿐만아니라 豆毛浦灣 전체를 방어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성의 서쪽 끝 구릉 정상부에는 평면「W」字狀의 높이 약 7m의 櫓臺가 있는데 방어에 유리하도록 각을 지게 축조하였다. 길이 약 20m정도 잔존하여 있는데, 석축수법은 본성과 비슷하다. 특히 북쪽 끝 귀퉁이에 성벽이 높게 축조된 곳이 있는데 이곳이 支城의 中心地로 推定된다.
서쪽 구릉 정상부에서 시작되는 남쪽성벽은 동쪽으로 내려와 소구릉의 끝에서 북쪽으로 꺽이는데, 이 곳은 비교적 지대가 높은 공간으로 평면 직사각형의 曲輪이 축조되어 있다. 이 석축 구간중 서쪽에서 동쪽으로 약 1/3지점은 土築으로 보이며 남쪽으로 돌출한 성벽이 있는데, 이 성벽의 동쪽 끝은 북쪽으로 약간 들어가 동쪽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 곳에는 석벽이 한변의 길이 약 4m, 높이 1.3m로 남아 있다. 또한 북쪽으로도 계속되어 도로를 건너 동쪽 淸江川쪽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 곳의 石築은 基壇石 위에 海岸地帶의 岩石을 板石狀으로 가공하여 立垂積한 것으로 1~5단의 석축이 높이 약 2m내외로 잔존하며, 왜성의 축조수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석재중 큰 것은 2.0×3.0×1.0m 크기이고, 틈새는 잡석을 끼워 보강하였는데 豆毛浦鎭城의 城壁으로 確認되었다. 豆毛浦鎭城과 倭城의 石築이 만나는 지점에서 동쪽으로 뻗은 石築은 높이 약 2m, 底面 幅 6m, 上面 幅 4m 정도인데, 외벽의 축성수법은 豆毛浦鎭城의 石築과는 若干 다른데, 加工石을 이용한 橫平積을 많이 하고 있다.
이 성벽 上面에 폭 2m정도 성 안쪽으로 1~3단의 석축이 있어 하단의 석축과 단을 이루는데 增築, 또는
鎭城의 石築과 같은 수법을 지닌 성벽이 구릉 끝 岩盤地帶까지 연결된다.
한편, 서쪽 구릉 정상부 櫓臺에서 북쪽으로는 방어에 유리하도록 堀切를 설치하여 죽성리 공동묘지가 있는 구릉과 단절시키고 있다. 또한 동북쪽으로도 竪堀가 설치되어 있는데, 土築인 북쪽 대지의 동쪽 외곽으로 연결되어 있다. 臺地는 북쪽으로 일직선상으로 뻗어 있는데, 削土에 의한 성벽인지 석축은 보이지 않았고, 외곽으로 空堀이 나란히 가고 있다. 대지의 끝에서 동쪽으로 꺾이는 지점에서 폭 약 4m의 虎口가 조사되었는데, 階段狀으로 臺地 위로 연결되어 있다. 출입구 좌측 외벽에 높이 약 5m의 석축이 보이고 있으며, 동쪽으로 小臺地가 연속되어 있다. 이 臺地의 아래는 急傾斜를 이루고 있는데, 小路를 따라 남쪽으로 灣入되어 지성의 동북쪽 건호와 마주친다. 日帝時代에 측량된 도면을 보면 小臺地의 동쪽으로 강변에 연하여 작은 岩盤으로 둘러 싸인 小丘陵이 있는데, 현재 民墓가 들어서 있다. 이 지역도 강가에 沿하여 독립된 공간을 형성하고 있어 있어 방어상으로 支城의 延長線에 該當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기장왜성의 總 坪數는 2600坪정도로, 석축 둘레 약 960m, 잔존 성벽 높이는 약 4~5m정도이며, 3~12단의 석축이 약 70°정도로 경사지게 축조되어 있다.
이 城은 黑田長政이 壬辰倭亂때 築城한 것으로 당시 동원된 人夫 수는 약 33,000명 정도로 丁酉再亂때에는 倭將 加藤淸正이 주둔하기도 하였다. 현재 왜성 주위는 대부분 밭으로 개간되어 있으며, 남쪽편에 城 外郭에 最近 일부 주택이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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