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거제시 沙等面 廣里
 

日本의 문헌(文獻)에 기록된 왜성동성 (倭城洞城)이 거제시 사등면(沙等面) 광리왜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推定)되며, 宣祖30年(1597) 왜장 종가(宗家)가 거제시 광리에 왜성(倭城)을 축조(築造)하였다,
광리왜성의 위치(位置)는 덕호리의 서남쪽 둔덕면과 접하는 바닷가에 임진왜란 7년 동안 일본군(日本軍)이 둘레350m의 토성(土城)을 쌓아 견내량(見乃梁)목을 감시하던 곳으로 “번득의 왜성” 또는 “외성”이라고 한다.
현재 천수각(天守閣)은 육안으로 확인 할 수 없고, 남쪽의 통영만과 남동쪽의 거제만이 외군의 주둔지인 안골포왜성, 웅천왜성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광리왜성을 지나야하는 수로(水路)의 요충지있다. 본환(本丸)으로 추정(推定)되는 부분의 주위에는 인공적(人工的)으로 깊이4m, 넓이 4m 정도의 깊은 수로(水路)가 3개 있으며, 그 안쪽에 폭 3m, 높이3m정도의 堤防(뚝)을 축조한 것으로 보이며, 남쪽으로는 절벽이 있습니다. 출입의 통로로 보이는 2m정도의 통로도 2곳이 있습니다. 외성(外城)으로 추정(推定)되는 부분은 육안으로는 정확한 부분은 확인이 불가능하며, 연병장으로 추정되는 부분은 현재는 전(田)과 답(沓)으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 거제도에 있는 영등포왜성,송진포왜성,장문포왜성과 왜성(倭城)으로 확실시 되는 율포왜성(율포산성),탑포왜성(탑포산성), 왜성(倭城)으로 추정(推定)되는 성포산성,수월리산성,등 거제도의 많은 곳에 왜성(倭城)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推定)된다.
그 이유(理由)는 통영 세병관(洗兵館)은 이경준(李慶濬) 제6대 통제사가 통제영을 이 고장 두룡포에 옮겨온 이듬해인 선조(先祖) 38년(1605) 그해 7월 14일에 준공한 통제영의 객사이다. 선조(先祖)는 1593년 8월에 충무공 이순신장군에게 당시 편제에도 없던 3도수군통제사를 제수하고 경상, 전라, 충청 3도의 수군(水軍)을 통괄지휘케 하는데 이 무렵 충무공 이순신장군은 한산도(閑山島)에 진영을 옮기고, 그 때에 작전,회의를 하던 곳이 제승당(制勝堂)이다. 유일하게 남해안(南海岸)에서 통영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에 왜군(倭軍)이 진입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이유(理由)로하여 거제도 지역은 큰 규모의 왜성(倭城)은 아니지만 작고, 많은 왜성(倭城)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변관광 : 영등포왜성,광리왜성,송진포왜성,장문포왜성,세병관,제승당,해저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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