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海倭城(船所倭城)

   
所在地 : 慶南 南海郡 南海邑 船所里 선소마을 뒤편
   

 

 

宣祖30年(1597) 협판안치(脇板安治)등이 남해왜성(南海倭城)을 축조(築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임진왜란은 일본 도요토미가 1592년, 명나라를 정벌하려는 야망으로 조선을 침략한 '7년 전쟁'이었다. 노량해전은 이 '7년 전쟁'의 최후 최대의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정유재란(丁酉再亂)은 1597년 도요토미는 가토고니시를 앞세운 14,500명의 군사를 선봉대로 1월15일 조선을 다시 침략한다. 일본은 3월 중순까지 총병력 141,500명을 파견한다. 10월에 북상한 일본군은 겨울을 대비한다는 이유로 수만의 군졸을 동원, 울산에서 순천에 이르기까지 남해안 800리에 왜성(倭城)을 축성(築城)하고 주둔했다. 이해 11월 남해에서는 왜장 협판안치(脇坂安治)와 종의지(宗義智)가 선소마을 윤산 천남대(輪山 天南台)에 왜성(倭城)을 축성하고 1,000여명의 군졸을 거느리고 주둔했다.
현재 남해왜성(南海倭城)은 전(田)과 답(沓)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천수각(天守台)은 현재에도 육안으로 알수 있으며, 내성도 잔존한 석축으로 형태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外城(제방)부분에 해당하는 부분은 도로와 주택으로 인하여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으며, 내성의 규모로 보았을 때, 진해 웅천왜성(熊川倭城)에 버금가는 규모로 보인다. 수로(水路)와 통로(通路)는 육안으로는 정확한 확인은 불가능하나, 선소마을 뒷편으로 통하는 통로는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사천만과 진주만에서 강진해로 진입하는 수로의요충지이다, 동쪽으로는 적벽으로 진입이 곤란하다. 남해왜성의 규모로 보아 다른 지역에도 지성이나 자성이 있는지는 현재에 확인되지 않고 있다.
1598년8월18일, '조선을 침략한 왜군을 철군시키라'는 도요토미의 유언에 따라 남해안에 주둔하였던 일본군의 철수가 시작되었다. 이때 왜성지에 주둔하였던 왜군들도 철군하였다. 떠나면서 무기 등을 매장했다는 토총형 봉토와 연병장으로 보이는 석축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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