順天倭城

 
 
 
소 재 지 :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산1번지 일대
축성시기 : 1597년 9월~11월말(약3개월간)
지방기념물 : 제 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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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년 9월 대판성(大板城)에서 열린 강화교섭 결렬로 풍신수실(豊臣秀吉)은 2차 조선침략에 착수하게 된다.
정유재란(1597年) 당시 육전에서 패퇴한 왜군 선봉장 우희다수가와 승당고호가 호남을 기지로 삼기 위해 3개월간 쌓은 토석성으로 왜장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이끈 1만4천여명의 왜병이 주둔 하여 조.명연합군과 두차례에 걸쳐 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호남지역에는 유일하게 한곳만 남아 있다.

순천왜성은 수륙요충지로서 성곽규모가 36,480평, 외성 2,502m, 내성 1,342m로 외곽성(토석성)3개,본성(석성)3첩, 성문 12개로 축조된 성곽으로 조.명 연합군이 축조한 검단산성쪽의 육지부를 파서 바닷물이 차도록 섬(垓字)처럼 만들고 연결다리가 물에 뜨게하여 예교, 왜교성이라 하며 일본인들은 순천성이라 부르고 있다.
정유재란(慶長役) 초에 일본군에 의하여 축성된 왜성은 왜교성(순천왜성),남해성,사천성,고성성,창원성,양산성,울산성 등 7개 왜성으로 왜교성을 제외한 나머지 왜성이 모두 경상도 연해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내륙지방에 침략군의 교두보가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본국에서부터 가까운 지역,즉 병참보급선이 원활한 지역에 군사력을 집중시켰다가 다시 북상의 기회를 노리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왜성의 축성은 대체로 독립된 구릉의 정상부나 바닷가를 택하여 山頂을 평탄하게 하고 그 사면을 급하게 깎아내려 올라가지 못하게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임진왜란 패인이 전라도의병과 수군의 용전에 있었다고 보고 전라도를 철저히 공략키 위해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심에 따라 전라도 각처에 진지를 구축해 공세를 강화하였으나 무술년(1598연)8월 그가 급사후 왜성에 주둔해 있던 침략 최정예 부대인 소서행장 왜군과 조·명 수륙연합군 사이에 2개월에 걸친 최후.최대의 격전을 펼친곳이다.
노량해전은 순천왜성 전투의 최종단계에서 비롯된 1회전의 마지막 전투였고, 조˙명 연합수군이 대첩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명장 이순신 장군은 왼쪽 가슴에 적탄을 맞아 전사했다.
현재 순천왜성(順天倭城)은 본환에 해당하는 부분인 천수각과 2지환,3지환은 복원을 한 상태이며, 외성(外城)에 해당하는 부분은 도시의 개발과 사유지로 인하여 복원을 하지 못한 상태이다. 외성(外城)에 해당하는 부분은 과수원과 임야,폐경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관광 :
순천왜성, 낙안읍성, 고인돌공원, 송광사,선암사,천자암 쌍향수,진남관,오동도, 돌산대교,검문도,향일암,흥국사,화정면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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